본문 바로가기
문화.엔터테인먼트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후기 및 솔직 리뷰

by 이슈로그 편집장 2026. 1. 31.
반응형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후기 및 솔직 리뷰

혹시 얼마 전 송년회나 신년회 술자리 풍경, 기억나시나요? 분위기가 무르익고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가 나오면 꼭 이런 친구 하나씩 있죠. 자기주장이 막힐 때쯤 스마트폰을 슬쩍 보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지는 친구요.

"야, 니체가 그랬어. 신은 죽었다고. 지금 우리 경제가 딱 그 꼴이야."
"스티브 잡스가 말했지. 갈망하라, 우직하게."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봅시다. 그 친구, 니체 책 한 권이라도 끝까지 읽어봤을까요? 아니, 당장 저부터도 반성합니다. 있어 보이고 싶어서, 내 초라한 논리를 감추고 싶어서 유명인의 이름을 방패 삼아 숨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말이 '진짜'인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내 말에 '권위'라는 묵직한 도장을 쾅 찍어서 상대방을 입 다물게 하고 싶을 뿐이죠. 그게 제일 편하고 안전하니까요.

어제 읽은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바로 저 같은, 아니 우리 같은 평범한 속물들의 명치를 아주 쎄게, 그리고 아주 우아하게 때리는 책입니다. 읽는 내내 "아이고, 이거 내 얘기네" 하며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으니까요.

이 책은 2026년 새해, 지적 허영심으로 쌓아 올린 우리의 성(城)이 고작 '종이 티백 하나' 때문에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오늘은 이 책이 던지는, 아프지만 묘하게 시원한 돌직구에 대해 아주 깊이 파고들어 보려 합니다.

 

낡고 고풍스러운 서재 책상 위에 놓인 홍차 찻잔 하나
낡고 고풍스러운 서재 책상 위에 놓인 홍차 찻잔 하나/출처: AI 생성 이미지

 

1. 완벽주의자를 무너뜨린 종이 한 장

이 소설의 주인공 '도이치' 교수. 이름부터 꼬장꼬장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평생을 독일 문호 괴테 연구에 바친 이 사람은, 인생 자체가 거대한 '각주(footnote)' 덩어리입니다. 아침 7시 기상, 홍차 물 온도는 95도, 책장은 저자 알파벳순 정렬. 모든 행동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세상은 '검증된 사실(Fact)'과 '쓰레기 같은 거짓(Fake)'으로만 나뉩니다.

그런데 그 견고한 성벽에 균열을 낸 건, 표절 시비도 아니고 학계의 공격도 아니었습니다. 고작 아침 식탁 위, 다 우려낸 홍차 티백 꽁다리였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보통 사람이라면 "오, 괴테 형님이 이런 낭만적인 말을?" 하고 홀짝 차를 마셨겠죠. 하지만 도이치는 다릅니다. 홍차 한 모금을 삼키기도 전에 뇌세포가 비명을 지릅니다.

"말도 안 돼. 내가 괴테 전집 143권을 달달 외우고, 그가 세탁소에 보낸 영수증 내역까지 꿰고 있는데... 이런 문장은 본 적이 없어! 이건 신성모독이야!"

이때부터 교수의 꼴이 가관입니다. 그는 그 길로 대학 도서관 지하 서고를 이 잡듯 뒤집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재채기를 해대며, 독일 바이마르 괴테 학회에 장문의 항의 메일을 보내고, 밤새 구글링을 하며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집착합니다. 심지어 강의실에서 학생이 "교수님, 이번 학점은..." 하고 물어봐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머릿속엔 온통 '저 괘씸한 가짜 문장'을 찾아내 박살 내겠다는 일념뿐이죠.

작가는 이 과정을 마치 스릴러 영화의 추격전처럼 묘사합니다. 고작 티백 문구 하나에 인생을 거는 노교수의 모습. 낄낄대며 읽다 보면 문득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는 '자존심'이나 '옳음'이라는 게, 남들이 볼 땐 저 티백 꽁다리처럼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두컴컴한 도서관 서고, 수백 권의 책 사이에 파묻혀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노교수의 모습
어두컴컴한 도서관 서고, 수백 권의 책 사이에 파묻혀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노교수의 모습/출처: AI 생성 이미지

 

2. 우린 내용을 보는가, 간판을 보는가?

도이치 교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문장의 진위보다 더 충격적인 건, 소설 속 대중들의 반응입니다. 교수가 흥분해서 티백 제조사에 전화를 걸어 "당신들은 사기꾼이야! 괴테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상담원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허무합니다.

"고객님,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괴테가 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고, 매출도 오르잖아요. 멋진 말이잖아요?"

작가는 여기서 아주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댑니다.

"우리는 문장에 이상할 만큼 쉽게 마음을 맡깁니다. 그 말이 정말 괴테의 것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괴테'라는 이름표가 먼저 우리를 설득해 버리니까요."

이 대목에서 저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2026년 지금, 유튜브나 SNS에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텍스트의 본질을 읽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붙은 '유명세'라는 간판, '구독자 수', '파란색 인증 마크'를 읽고 있었던 겁니다.

교수가 무너져가는 과정은,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빈약함을 감추려 했던 우리 모두의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내가 한 말은 콧방귀도 안 뀌면서, 유명 유튜버가 한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는 세상. 도이치 교수의 분노는 어쩌면,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원초적 공포였을지도 모릅니다.

 

 

반응형

 

 

3. 팩트에 갇혀 놓친 '진짜 삶'

교수가 미친 사람처럼 '가짜 명언'의 출처를 파헤치며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있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진짜 세계인 가정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아내는 남편의 기행에 지쳐 말문을 닫아버리고, 사춘기 딸은 아빠를 '대화가 안 통하는 벽' 취급합니다. 교수는 18세기 독일 문학 속의 사랑은 논문으로 완벽하게 분석해 내지만, 정작 거실 소파에 앉아 외로워하는 아내의 눈빛은 전혀 해석하지 못합니다. 텍스트(활자) 속에서는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한 신(God)이었지만, 리얼리티(현실) 속에서는 빵점짜리 가장이었던 겁니다.

어느 날 밤, 교수가 티백 회사를 찾아가 따지려다가 문득 쇼윈도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넥타이는 비뚤어지고, 눈은 퀭하고, 입가엔 침 자국이 남은 초라한 노인.

그 순간 그는 깨닫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괴테가 이 말을 했든 안 했든, 지금 내 꼴이 이렇게 비참한데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적 엘리트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벌거벗은 한 인간이 서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거리의 비참함이 그를 깨운 것이죠.

 

밤거리의 상점 쇼윈도 유리창. 그 유리에 비친 초라하고 헝클어진 노신사의 모습
밤거리의 상점 쇼윈도 유리창. 그 유리에 비친 초라하고 헝클어진 노신사의 모습/출처: AI 생성 이미지

 

4. 가짜가 진짜를 위로하는 순간

소설의 하이라이트이자, 제가 가장 좋아해서 책 귀퉁이를 접어놓은 부분은 교수의 변화입니다. 이 부분이 정말 압권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교수는 딸아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울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예전 같으면 "감정은 이성을 흐리게 한다"며 괴테의 격언을 인용해 훈계를 했겠죠. 하지만 교수는 아무 말 없이, 그 문제의 '가짜 티백'을 우려 딸에게 건넵니다.

딸이 훌쩍이며 티백 꽁다리를 읽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빠, 이거 괴테가 한 말이야? 되게 위로가 되네... 엉망진창인 내 마음도 하나로 모아질 수 있다는 거잖아."

교수는 순간 멈칫합니다. "그건 가짜야!"라고 소리쳐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딸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하죠.
"그래... 괴테가 그랬다면,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괜찮다."

그토록 혐오했던 '출처 불명의 엉성한 거짓말'이, 수십 편의 완벽한 논문보다 딸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데워준 겁니다. 팩트는 틀렸지만,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은 '진짜'였으니까요. 가짜 명언 때문에 시작된 한바탕 소동이, 역설적이게도 껍데기뿐이던 가족을 '진짜 가족'으로 묶어주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5. [결론] 내 삶의 문장은 내가 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제 모니터 앞에 덕지덕지 붙여두었던 명언 포스트잇들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떼어내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어 나를 증명하려 했던 시간들, 이제는 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23살의 젊은 천재 작가 스즈키 유이가 우리 같은 '어른'들에게 던지는 귀여운 도발이자, 아주 따뜻한 위로입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무엇이 팩트인지 알 수 없는 혼란한 2026년. 작가는 주인공 도이치를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괴테는 괴테의 삶을 살았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면 됩니다. 팩트 체크보다 중요한 건 네 마음의 울림이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오늘만큼은 유명한 사람의 근사한 말을 빌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여러분의 투박한 언어로, 진심을 담아 주변 사람에게 "오늘 고생했어", "사랑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는 없어도 됩니다. 족보가 없으면 어떻습니까. 그 말이 내 아내, 내 친구, 내 동료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명언일 테니까요.

 

창밖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평화로운 오후 풍경
창밖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평화로운 오후 풍경/출처: AI 생성 이미지

📚 이런 분들에게 진심으로 권합니다
  •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일부러 어려운 책만 골라 읽는 분
  • 가족이나 연인에게 논리적으로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
  • '권위'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가볍고 유쾌하게 진짜 나를 마주하고 싶은 분

⚠️ 본문 내용 및 이미지는 무단 복제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 주십시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