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나방 도서 리뷰,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문화 살롱의 문을 엽니다. 오늘은 평소처럼 향긋한 차 한 잔을 권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 한 모금조차 비릿하게 느껴져 며칠째 속이 울렁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이 묵직한 물건은, 우리가 흔히 읽는 '소설'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이것은 차라리 현미경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가족애' 혹은 '헌신'이라는 예쁜 포장지로 꽁꽁 싸매두었던, 관계의 가장 깊고 썩어문드러진 환부를 100배율로 확대해서 보여주는 끔찍한 현미경 말입니다.
바로 한국 호러 미스터리의 새로운 거장, 마태(Ma-tae) 작가의 2026년 문제작 <누에나방>입니다. 지난 리노블 공모전에서 대상작 《습기》로 심사위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그가, 이번에는 더 지독하고 축축한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책을 읽는 도중 세 번 덮었습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인 불쾌감이 명치를 찔러왔기 때문입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저는 제 방의 방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그리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발소리가 평소와 같은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리뷰가 아닙니다. 202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가정 내 사육'의 현장을 고발하는 생생한 목격담입니다. 작가가 이토록 잔인한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과연 무엇인지, 그 지독한 매혹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1. 사육된 사랑의 비극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소름 끼칠 정도의 정적입니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집'은 우리가 흔히 모델하우스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올 허용하지 않는 그 결벽적인 공간이 오히려 독자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옵니다. 작가는 이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을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병들고 불완전한 관계를 조명합니다.
제목인 '누에나방(Bombyx mori)'에 대해 잠시 생물학적 팩트를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 곤충은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도움 없이는 번식조차 할 수 없는' 가축화된 생물입니다.
수천 년간 인간은 오직 비단을 얻기 위해 누에의 야생성을 철저히 거세했습니다. 그 결과 누에나방은 날개가 있어도 근육이 퇴화해 날지 못하고, 입이 퇴화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이 정해준 구역에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뒤, 굶어 죽어가는 운명이죠.
마태 작가는 이 끔찍한 생물학적 사실을 소설 속 '주인공의 삶'과 소름 끼치도록 정교하게 포개어 놓습니다. 주인공은 신체 건장한 성인이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입고 나갈 옷의 색깔, 먹어야 할 영양제의 종류, 심지어 만나는 친구의 성향까지 모두 엄마의 '결재'를 거쳐야 합니다.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은 엄마라는 관리자에 의해 데이터화되고 통제됩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이 자녀에게 쏟는 그 지극한 정성이 양육입니까, 아니면 사육입니까?"
초반부, 주인공이 느끼는 미묘한 안락함은 독자에게 일종의 최면을 겁니다. '그래, 세상이 험한데 집만큼 안전한 곳이 어디 있어? 저런 엄마가 있으면 편하겠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죠. 하지만 작가는 문장 사이사이에 불길한 균열을 심어놓았습니다.
엄마가 건네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이 마치 누에에게 던져주는 뽕잎처럼 느껴지는 순간, 이 소설은 평범한 가정 드라마에서 숨 막히는 사이코 스릴러로 장르를 급선회합니다. 작가가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과잉된 보호는 보호가 아니라 억압이며, 그것은 대상의 영혼을 서서히 파괴하여 야생성을 말살시킨다는 사실입니다.
2. 엄마, 완벽한 타인
이 소설이 주는 공포의 질감은 헐리우드 공포 영화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전기톱을 든 살인마나 원한 맺힌 귀신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갓 지은 밥 냄새를 풍기는 '엄마'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존재,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존재가 공포의 주체로 돌변할 때, 인간이 느끼는 인지 부조화와 배신감은 극에 달합니다.
소설 속 엄마는 헌신적입니다. 너무나 헌신적이어서 문제입니다. 자식의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스마트폰 불빛조차 감시하고, 자식이 버린 쓰레기통을 뒤져 영수증을 확인하는 것을 '관심'과 '사랑'이라고 정당화합니다. 작가는 이러한 엄마의 행동을 악의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숭고하고 희생적인 사랑처럼 묘사하기에 더 끔찍하고 역겹습니다.
특히 제가 책을 읽다가 책장을 덮고 헛구역질을 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식사 장면입니다. 엄마는 다 큰 아들에게 씹기 편하도록 푹 삶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으깬 음식만을 권합니다.
"넌 위장이 약하잖아. 엄마가 다 갈아놨어. 그냥 삼키기만 하면 돼."
부드러운 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는 그 행위가, 마치 자식의 '이빨'을, 즉 세상을 씹어 삼키고 저항할 야성을 제거하려는 의식처럼 묘사됩니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가 마치 감옥의 철창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저만의 착각이 아닐 겁니다.
작가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도, 대화의 뉘앙스만으로 그 숨 막히는 지배 구조를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엄마는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밖은 위험해."
반복되는 이 대사는 일종의 주술처럼 주인공의 뇌를 파고들어 스스로를 무능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사랑과 통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뒤틀린 모성애가 얼마나 파괴적인 괴물이 될 수 있는지, 작가는 엄마의 인자한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서늘한 칼날을 통해 경고합니다.
3. 날지 못하는 나방
소설의 중반부,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여기서부터 독자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되지만, 마태 작가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누에나방은 날개가 퇴화했습니다. 날개 근육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지방만 가득 차 있어,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몸이 뜨지 않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상태가 딱 그렇습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엄마의 고함이나 물리적인 폭력이 아닙니다. 바로 주인공 자신의 '내면화된 무기력'입니다.
"내가 나가서 밥은 벌어먹을 수 있을까?", "엄마 없이 세금은 어떻게 내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평생을 고치 속에서 받아먹기만 했던 주인공은 세상이라는 정글을 마주할 근육이 전무합니다.
현관문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주인공의 모습은, 2026년 현재 사회 문제로 대두된 '은둔형 외톨이'나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의 연금에 기생하는 '캥거루족'의 초상과 겹쳐지며 뼈아픈 현실 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작가는 물리적인 감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신적인 거세'임을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날 수 있는데 안 나는 게 아니라, 날 수 있는 기능 자체를 상실해버린 존재의 절망. 그 처절하고 우스꽝스러운 날갯짓이 텍스트 너머로 전해져 읽는 내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독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로 날고 있는가, 아니면 날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4. 습기, 마태의 인장
마태 작가의 전작 《습기》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그의 문장에는 물기가 배어 있습니다. 이번 작품 <누에나방>에서는 그 습도가 거의 99%에 육박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제 방의 제습기를 켜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 작가가 묘사하는 집 안의 공기는 눅눅하고 끈적합니다.
벽지 뒤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을 것 같고, 장판 밑에는 정체불명의 벌레가 기어 다닐 것 같은 불쾌함. 이러한 '촉각적 공포'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장치입니다. 서로에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끈적한 애증의 관계, 환기되지 않아 썩어가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내뿜는 악취가 텍스트를 뚫고 나옵니다.
특히 작가는 냄새 묘사에 탁월합니다. 엄마의 값비싼 화장품 냄새와 섞인 비릿한 반찬 냄새, 장마철 덜 마른 빨래에서 나는 쉰내, 그리고 주인공의 방에서 나는 정체 모를 쿰쿰한 냄새. 이 모든 냄새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집 냄새'는 독자의 비위를 상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이우혁 작가가 "음습하게 조여온다"고 평했던 그 마태 특유의 문체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축축함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서로 엉겨 붙었을 때, 그 사이에서 곰팡이가 피어나듯 발생하는 부패의 냄새를 상징합니다.
5. 집, 안식처인가 감옥인가
결말부에 이르러 소설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억눌렸던 모든 감정이 폭발하고, 가장 완벽해 보였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하지만 독자가 기대했던 시원한 사이다 같은 복수는 없습니다. 누에나방은 입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짝짓기와 산란이라는 의무가 끝나면 그저 굶어 죽습니다.
소설의 결말은 이 생물학적 비극을 소름 끼치는 인간의 드라마로 치환합니다. 과연 이 집에서 '진짜로' 살아남은 자는 누구일까요? 아니,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있기는 할까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 엉망이 된 거실 한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태아 같기도 하고, 고치 속에 갇혀 말라 비틀어진 번데기 같기도 합니다.
작가는 명확한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부서진 집의 단면을 독자 앞에 툭 던져놓습니다. 그것은 마치 "너희 집은 안 그러니?"라고 비웃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책을 덮고 난 후, 저는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집은 안녕한가?" 우리가 도어락을 굳게 잠그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한다고 믿는 그 행위가, 실은 내부의 구성원들을 고립시키고 썩게 만드는 원인은 아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날개를 꺾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누에나방>은 덮고 나서가 더 무서운 책입니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현관문을 여는 순간 느껴지는 집 안의 공기가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엄마, 혹은 아내의 "밥 먹었니?"라는 지극히 평범한 인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심문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 작가가 우리에게 건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저주이자, 그가 이 시대를 향해 던지는 서늘한 메시지입니다.

📝 블로그 주인장의 한 줄 요약
- ✅ 추천 대상: 영화 <유전>이나 <곡성>이 주는 찝찝하고 깊은 공포를 즐기는 분, 가족 관계의 어두운 이면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분.
- ❌ 비추천 대상: 가족애를 다룬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기대하는 분, 눅눅하고 기분 나쁜 여운을 견디기 힘든 분.
- ⭐ 별점: ★★★★★ (5.0 / 5.0) - 한국형 도메스틱 호러(Domestic Horror)의 새로운 기준점.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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