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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엔터테인먼트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 이로 소설 후기

by 이슈로그 편집장 2026.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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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 이로 소설 후기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 이 긴 제목의 소설을 검색해서 이곳까지 오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닿을 듯 말 듯 한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2시, 스마트폰 액정 불빛만이 유일하게 깨어 있는 방 안에서 우리는 세상과 가장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고립된 섬처럼 부유하곤 합니다. 오늘 소개할 이로(Iro) 작가의 소설은 바로 그 '연결된 고독'의 틈새를 파고듭니다. 화려한 무대 위의 아이돌과 그를 동경하는 팬, 전혀 다른 궤도를 돌던 두 행성이 0과 1의 디지털 신호를 타고 기적처럼 조우하는 이야기. 이것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차가운 액정 너머에도 분명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감각에 대한 복원기입니다.

 

 

이로 작가의 소설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 책 표지 이미지
이로 작가의 소설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 책 표지 이미지 /

출처: AI 생성 이미지(원본: 교보문고)

 

 

 

[작품 정보 (Info)]
* 도서명: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
* 지은이: 이로 (Iro)
* 출판사: 픽션들
* 출간일: 2026년 2월 6일
* 페이지: 152쪽 (얇지만, 읽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 특이점: 이로 작가의 첫 소설 『뛰어들어, 지켜, 더 크게 안아』의 전면 개정판

 

1. 저자 이로: 관계의 물성

이 책의 텍스트를 눈으로 훑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저자 이로라는 사람이 가진 독특한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홍대 앞, 책 냄새와 사람의 온기가 뒤섞인 독립서점 '유어마인드'를 오랫동안 지켜온 책방지기입니다. 서점이라는 공간은 묘합니다. 수많은 타인이 오가지만, 책을 고르고 읽는 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가 되는 고독의 공간이기도 하죠. 작가는 그 카운터 너머에서 수만 명의 독자가 책을 집어 들고, 망설이고, 끝내 자신의 세계로 가져가는 뒷모습을 묵묵히, 아주 오랫동안 관찰해온 사람입니다.

그가 써 내려간 문장들, 특히 이번 소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거리두기' 미학은 바로 이러한 관찰자의 시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대상에게 섣불리 감정을 이입하거나, "이것은 사랑이다"라고 단정 짓지 않습니다. 대신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직전, 숨을 멈추고 뷰파인더를 응시하는 사진가처럼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물성이 없는 디지털 세계에서 과연 관계의 물성을 느낄 수 있을까?" 작가는 종이책의 질감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볍다고 여겨지는 SNS 메시지를 소재로 가장 무거운 진심을 이야기합니다. 이 아이러니한 충돌이 만들어내는 파열음,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첫 번째 매력입니다.

 

2. 비현실 속 현실적 마음

소설의 시작은 마치 10대들이 열광하는 '팬픽'이나 달콤한 판타지 드라마의 도입부처럼 보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 '나'에게, 어느 날 오랫동안 동경해오던 최애 아이돌 'X'로부터 인스타그램 DM이 도착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X라고 합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이 스마트폰 액정에 뜨는 순간, 주인공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가 활자 너머로 들리는 듯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지 않나요? 나의 우상이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요. 소위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주인공의 상황은 독자들에게 짜릿한 대리 만족을 선사하며 시선을 단숨에 낚아챕니다.

하지만 이로 작가는 이 매혹적인 설정을 결코 가볍게 소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DM 창이라는 밀실, 그 폐쇄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 변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처음에는 환희와 흥분이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진짜일까?' 하는 의심으로, 그리고 '내가 감히 이 사람과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자기 검열로 이어집니다. 특히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그 '공백의 시간'에 대한 묘사는 압권입니다. 상대방이 글자를 입력하고 있다는 말풍선이 떴다가 사라질 때의 그 피 말리는 초조함, 읽음 표시(1)가 사라졌는데도 답이 없을 때의 불안감. 작가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만큼은 우리가 짝사랑을 할 때 겪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고통으로 그려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 새벽 3시에 잠들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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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평으로 흐르는 감정

우리가 흔히 '덕질'이라고 부르는 팬덤 문화는 기본적으로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전제로 합니다. 무대 위 핀 조명을 받는 스타는 높은 곳에서 빛나고, 객석 어둠 속에 있는 수많은 팬은 그를 올려다봅니다. 이것은 숭배에 가까운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나'와 'X'의 관계는 DM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1:1의 채널을 통해 서서히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합니다.

 

책을 펼쳐 둔 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 때문에 두 개의 그림자가 페이지 위에서 하나로 겹쳐지는 연출 샷.
책을 펼쳐 둔 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 때문에 두 개의 그림자가 페이지 위에서 하나로 겹쳐지는 연출 샷. / 출처: AI 생성 이미지

 

소설 중반부, X는 화려한 아이돌로서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무른 속살을 드러냅니다. 무대 공포증, 대중의 시선에 대한 피로감, 아무에게도 말 못한 외로움 같은 것들을요. 이때 주인공은 더 이상 '팬'의 입장에서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 이야기를 듣습니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이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잰다. 단순히 스타의 빛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가 가진 어두운 그림자까지 기꺼이 나눠 가지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요? 제목인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는 바로 이 순간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서로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녹아들 수 없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요. 하지만 각자의 궤도를 돌던 두 존재의 그림자가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이라도 겹쳐진다면, 그 연결감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4.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힘

2026년, 바야흐로 '대 전시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먹는 음식, 입는 옷, 방문한 여행지, 심지어 연인과 나누는 사랑의 말들까지 캡처해서 SNS에 전시하고 타인의 '좋아요'로 내 삶을 검증받습니다. 보여주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가치를 역설하죠.

'나'와 'X'가 나누는 DM은 철저히 비밀입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고,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완벽하게 차단된 그 둘만의 밀실에서 오가는 대화는, 그렇기에 전시를 위한 가식이 없습니다. 오직 서로에게 닿기 위한 절박한 생존 신호일 뿐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 듯합니다. "우리가 화면을 통해 나누는 온기는 가짜인가?" 소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비록 0과 1로 이루어진 차가운 디지털 텍스트일지라도, 그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은 물리적인 포옹보다 더 뜨거울 수 있음을 증명해 보입니다. 텍스트가 주는 상상력, 행간에 숨겨진 떨림,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의 밀도.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비로소 '마음'이라는 실체가 됩니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의 사랑이 가볍다고 냉소하는 기성세대의 시선에 대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마음이 더 치열하고 숭고할 수 있습니다"라고 변론하는 아름다운 변론서와도 같습니다.

 

5. 개정판의 깊어진 시선

이 책의 태생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로 작가의 첫 소설이었던 『뛰어들어, 지켜, 더 크게 안아』의 전면 개정판입니다. 제목이 바뀌었다는 것은, 작가가 이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이전 제목이 '뛰어든다', '지킨다', '안는다'와 같은 동적인 행위와 용기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는 상태, 여운, 그리고 '머무름'에 더 무게를 둡니다.

개정판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문장의 '다이어트'였습니다. 불필요한 수식어들이 과감하게 가지치기 당했고, 그 자리에 침묵과 여백이 들어찼습니다. 감정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만듭니다. 152쪽이라는, 요즘 소설치고는 꽤 얇은 분량이지만 읽는 속도는 결코 빠를 수 없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단순히 원고를 교정한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이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성숙해진 깊이를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습니다.

 

6. 이 책, 더 깊게 읽기

이 소설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혹은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베테랑 호스트로서, 이 책의 감동을 200% 끌어올릴 수 있는 '최적의 페어링(Pairing)'을 제안합니다.

  • 시간: 자정 이후, 세상의 소음이 소거된 시간.
  • 조명: 천장 등을 끄고, 노란빛이 도는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세요. 그림자가 길게 질수록 좋습니다.
  • 음악: 가사가 없는 로파이(Lo-fi) 힙합이나, 쳇 베이커(Chet Baker)의 트럼펫 연주곡. 가사가 있는 노래는 텍스트의 목소리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 음료: 차가운 물 한 잔, 혹은 도수가 높지 않은 위스키 온더락. 얼음이 녹으며 나는 달그락 소리가 이 소설의 BGM이 되어줄 겁니다.

이 환경에서 책을 읽다 보면, 활자들이 종이 위를 떠나 여러분의 방 안을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마저 이야기가 되는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늦은 밤,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놓인 책과 위스키 잔.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보케(빛망울) 처리되어 '도시의 고독'과 '위로'를 동시에 표현.
늦은 밤,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놓인 책과 위스키 잔.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보케(빛망울) 처리되어 '도시의 고독'과 '위로'를 동시에 표현. / 출처: AI 생성 이미지

 

7. 총평: 픽셀 너머 온기

마지막 장을 덮고 책을 내려놓았을 때, 습관처럼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든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 액정. 하지만 이 차가운 벽 너머에도 분명 나처럼 외로움을 느끼고, 누군가의 온기를 기다리는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서로의 그림자가 잠시 겹치는 것만으로도,』는 닿을 수 없는 별을 사랑해본 적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랜선 너머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가의 따뜻한 위로이자 헌사입니다.

누군가는 온라인에서의 관계를 허상이라 폄하할지라도, 작가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림자라도 겹쳐진다면, 우리는 이미 함께 있는 것"이라고. 혹시 지금 인간관계에 지쳐 '동굴'로 숨고 싶으신가요? 하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은 두려우신가요? 그렇다면 이번 주말, 세상의 소음은 잠시 음소거 해두고 이로 작가가 초대한 은밀한 대화의 방에 접속해보시길 권합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잃어버렸던 설렘과, 픽셀을 뚫고 나오는 사람의 온기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문화 살롱 호스트의 한 줄 평 "닿을 수 없는 '최애'와 나, 그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메우는 가장 서정적인 DM."

추천 별점: ⭐⭐⭐⭐☆ (4.5 / 5.0)
(이 책을 읽고 나면, 알림 울리는 스마트폰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 본문 내용 및 이미지는 무단 복제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 주십시오. (Writer: 문화 살롱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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