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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야구 심판으로서의 경험
야구는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의 세계를 품고 있다. 하나하나의 투구, 하나하나의 스트라이크에는 수많은 변수와 계산이 담겨 있고, 이는 수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다. 타자의 스윙, 투수의 정밀한 제구, 포수의 절제된 프레이밍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의 환호, 탄식, 그리고 감정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그 모든 중심에는 조용하지만 막대한 책임을 지닌 존재가 있다. 바로 심판이다. 공정함과 경기의 흐름을 유지하는 임무를 맡은 심판은 칭찬보다는 비난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심판의 자리는 그런 곳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심판의 판정을 의심해본 적이 있다. 나 또한 수없이 많은 경기를 보며 "방금 건 볼 아니야?" 또는 "저건 분명히 세이프잖아"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때로는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분노는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심판은 경기를 어떻게 볼까?", 그 자리에서 보면 모든 게 그렇게 명확하게 보일까?" 그 단순한 흥미는 점점 하나의 의지로 발전했다. 나는 결심했다. 나도 그 자리에 서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은 심판이 되기 위해선 자격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곧 그것이 오해라는 걸 깨달았다. 10주간의 아마추어 심판 교육 과정은 단순히 규칙을 암기하는 수준을 훨씬 넘었다. 그 안에는 무엇보다도 ‘침착함’과 ‘책임감’이라는 정신적 훈련, 신체적 트레이닝, 반복적인 시뮬레이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반복 연습을 해도 스트라이크존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슬라이딩하는 주자와 태그하는 포수를 정확히 판단하는 데에는 훈련된 시야와 집중력이 필요했다. 내 첫 실전 경기는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이었다. 포수 뒤에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섰을 때, 나는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꼈다. 투수의 손에서 부드럽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공, 타자의 반응, 포수의 미세한 움직임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보고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 순간은 놀라운 흥분감과 함께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단순한 관객이 아니다. 나는 경기의 결과를 결정짓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심판은 경기의 스타가 아니다. 그들은 그늘 속에 있으면서도 경기의 중심에 존재한다. 잘해도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실수할 때에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단순한 업무 그 이상이다. 그것은 스포츠의 정신을 지키고, 공정함을 수호하는 하나의 사명이다. 이 글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내가 어떻게 아마추어 심판이 되었는지, 그 자리에 선 이후 야구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여정이 내 인생과 성장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다. 야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싶거나, 단순한 관전 이상으로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동기이자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 istockphoto
⚾ 아마추어 심판이 되기로 한 계기
내가 처음으로 심판이라는 위치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경기장의 한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평소처럼 열정적으로 관중석에서 응원하고 있었고,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에서 단 하나의 판정이 경기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관중석은 폭발했고, 많은 팬들이 야유를 경기장 안으로 퍼부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건 말도 안 되는 판정이야!” 나는 소리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화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노는 곧 의문으로 바뀌었다. “왜 심판은 그렇게 판정했을까?”, “정말 나쁜 판정이었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다르게 볼 수 있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심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경기를 보는 동시에 심판들의 동작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심판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알고 보니 심판의 세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투수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지고, 주자의 플레이는 0.1초 이내에 판단해야 했으며, 심판은 플레이뿐만 아니라 관중, 감독, 코치의 반응까지 고려해야 했다. 그들은 단지 규칙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닌, 현장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감독자이자 중재자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역 체육회 게시판에서 “생활체육 야구 아마추어 심판 모집”이라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냈다. 그날 밤 나는 흥분과 긴장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아직 규칙도 완전히 외우지 못했는데, 이 교육을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었다. “진짜 세상은 직접 들어가 봐야 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다.” 10주간의 교육 과정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혹독했다. 이론 수업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실기 중심의 훈련이었다. 우리는 스트라이크존 판정, 슬라이딩 태그 플레이, 적절한 위치 선정, 심판 간 신호 체계 등 실습을 반복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훈련은 ‘가상 경기 상황’을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이었다. 예를 들어, 타자가 번트를 대고 1루로 전력질주하고, 동시에 3루 주자가 홈으로 돌진하는 복합 상황에서, 심판은 어디에 서야 하며, 누구를 먼저 보고 어떤 콜을 내려야 하는지를 2~3초 내에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수없이 반복 연습했고, 때로는 단 몇 초의 장면을 30분 넘게 분석하기도 했다. 훈련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신의 판단을 믿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망설이면 경기의 흐름이 끊기고, 흔들리면 신뢰를 잃는다. “지금 건 스트라이크인가요, 볼인가요?”라는 질문에 “글쎄요...”라고 답할 수는 없다. “스트라이크입니다!” 혹은 “볼입니다!”라고 확신 있게 외쳐야 한다. 물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기준’이었다. 경기 속도가 빠른 상황 속에서도 심판은 스스로의 기준을 계속해서 되새기며 중심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 실전 배정일이 찾아왔다. 부산의 한 생활체육 야구장에서 나는 홈 플레이트 심판을 맡게 되었다. 보호 장비를 조이고 경기장을 바라보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제 진짜다. 내가 진짜 심판이 되는구나.” 첫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투수가 와인드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지금부터 너는 경기의 일부다. 이건 너의 책임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긴장은 사라지고, 나는 매 투구마다 완전히 집중하게 되었다. 스트라이크 콜을 외칠 때 목소리는 떨렸고, 아웃 판정을 내릴 때 손이 약간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익숙해졌다. 한 경기 내내 계속 판단을 내려야 하는 그 위치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소모적이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몰입감을 안겨주었다. 경기가 끝난 후 나는 완전히 탈진했지만, 가슴은 벅찼다. ‘해냈다’는 기쁨과 동시에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내가 심판이 되기로 한 결정은 단순한 흥미를 넘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이었고, 나만의 방식으로 야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그 갈망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내 삶의 시각과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 경기장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책임감
심판으로서 경기장에 서면 느끼는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다. 긴장감, 두려움, 설렘, 그리고 책임감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 단 하나의 판정이 경기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고, 선수들의 반응과 팬들의 감정까지 흔들 수 있다.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그 찰나에는 공기조차 무거워진다. 그 짧은 순간이 바로 심판의 집중력이 최고조로 시험받는 때다. 특히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정말 다양한 상황이 발생한다. 프로 리그처럼 잘 다듬어진 시스템이 갖춰진 게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경기장의 환경이 열악하거나 팀 간 기량 차가 크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로 인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자주 생긴다. 변수가 많을수록 심판은 더 높은 관찰력과 유연한 판단력을 요구받는다. 단순히 규칙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경기 전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투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하나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을 때, 심판은 냉정함을 유지하고 정확한 콜을 내려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거나 외부 압력에 영향을 받는 순간, 경기는 금세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런 압박에 자주 흔들렸다. 특히 홈 플레이트 심판을 맡아 경기를 전체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다스려야 했다. 실제 경기 중에 실수를 저지른 적도 있었다. 주자의 슬라이딩을 놓치거나, 병살 플레이 도중 잠깐 머뭇거리다가 아웃 선언이 늦어진 일이 있었다. 그런 경우 곧바로 항의가 들어오고,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심판에게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일관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독, 코치, 선수들 모두 심판이 완벽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심판이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잣대로 판정하는지, 기준이 명확한지, 그리고 스스로의 설명에 확신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 경기 전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오늘 너의 기준은 무엇인가?”, “지금 그것을 얼마나 지킬 수 있겠는가?” 이 작은 습관은 내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되돌려주는 내면의 나침반이 생긴 듯했다. 또한 압박을 견디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동료 심판들과의 소통이었다. 모든 경기는 심판진이 함께 운영하며, 홈 플레이트 심판과 베이스 심판이 역할을 나누어 협력해야 하므로 서로 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경기 전에 가볍게 몇 가지 시나리오를 공유하고,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미리 의견을 맞추곤 했다. 예를 들어, 내가 홈 플레이트 심판을 맡았을 때는 1루 심판과 사전에 “견제 시 태그는 당신이 본다”, “본루 플레이는 내가 우선한다”는 식으로 협의를 해 두면, 경기 중 혼선 없이 자연스럽게 콜이 나올 수 있었다. 이런 팀워크는 심판들 간의 긴장을 줄여주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판정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단 한 순간도 쉴 틈이 없다. 매 타석, 매 투구, 매 플레이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동시에 경기의 흐름도 놓쳐서는 안 된다. 포수와 타자의 성향, 투수의 컨디션, 감독의 작전 패턴까지 모두 관찰하며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경기가 끝난 후에 찾아온다. 경기장을 나서도 머릿속에 질문이 맴돈다. “내 판정은 정확했을까?”, “그 순간 좀 더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때는 단 한 번의 콜 때문에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자아 성찰의 시간이야말로 심판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기준을 점검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팬들의 야유, 코치의 항의, 선수들의 불만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시선을 견뎌내고, 중심을 지키며, 경기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심판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 그라운드에서 배운 인생 교훈
내가 심판 활동을 시작한 이후,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내가 그라운드에서 얻은 경험은 단순히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인생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으로 확장되었다. 공 하나가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고, 하나의 판정이 전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맡은 역할이 얼마나 큰 집중력과 책임감을 요구하는지를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그 경험은 내 인생에서 ‘판단’이라는 행위의 무게와 ‘신중함’의 중요성을 다시 되새기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공정함’의 가치였다. 심판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팀의 인기, 선수의 실력, 관중의 반응, 코치의 항의 그 어떤 것도 나의 콜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오직 규칙과 사실에 근거하여 판정해야 하며, 그 기준은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나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부 분위기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작은 흔들림 하나가 경기 전체를 뒤틀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공정함이 무너질 때의 파급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공정함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 태도는 자연스럽게 내 일상생활로도 이어졌다. 직장에서 회의를 할 때나, 가족 간의 갈등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내리려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말투나 기분에 따라 나도 모르게 흔들릴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실은 무엇인가?”, “이 결정이 전체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심판 활동이 내게 준 이 ‘공정함’이라는 시선은 인간관계는 물론,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로 배운 교훈은 ‘침착함’의 중요성이었다. 야구는 돌발 상황의 연속이다. 홈으로 달려오는 주자, 외야에서 던져진 송구, 태그를 준비하는 포수 이 모든 상황이 단 1초 안에 벌어진다. 벤치는 소리를 지르고, 관중은 함성을 질러대며, 나의 심장은 빠르게 뛴다. 이런 순간에 심판이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지면, 그 판정은 흔들리고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깊은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훈련을 해왔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나는 자주 머뭇거렸고, 판단이 늦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침착함이란 단순히 냉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나의 기준에 집중하는 힘이었다. 이 훈련 덕분에 나는 일상에서도 위기 상황에 쉽게 휘둘리지 않게 되었고,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심판 활동은 ‘신뢰’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주었다. 경기장에서 신뢰는 말로 쌓이지 않는다. 모든 판정마다 일관된 기준을 유지하고, 항의 속에서도 감정을 조절하며, 잘못했을 때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설명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 쌓여서 진짜 신뢰가 된다. 팬들의 환호나 선수들의 인정보다 더 값진 것은, 경기가 끝난 후 “오늘 콜 깔끔했어요”라는 한 마디였다. 그 말 한 마디가 며칠간의 피로를 모두 잊게 만들었다. 심판이라는 역할은 단순히 규칙을 알고, 그 규칙을 적용하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경기를 조율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때로는 갈등을 중재하는 심리적 리더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자리다. 심판은 선수, 감독, 팬 모두를 존중해야 하며, 그 속에서도 자기 기준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 경험은 내게 커다란 인격적 성장을 안겨주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나 자신의 내면 앞에서도 나는 더 신중하고, 더 정직해질 수 있었다. 야구는 단순한 승부의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이성, 긴장이 결합된 종합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수없이 흔들렸고, 동시에 나는 성장했다. 단 하나의 판정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서, 나는 인생의 수많은 순간도 그처럼 단호하면서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그라운드 위에서 배운 그 교훈은 지금도 내 일상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 맺음말: 경기장을 넘어선 배움
아마추어 야구 심판의 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며, 감정적으로도 고된 여정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을 만들었고, 지금도 나는 그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자주 되새긴다. 내가 그라운드에서 보낸 시간은 단지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비추고 성장해가는 과정이었다. 단 하나의 콜에도 전적인 집중이 요구되는 역할에서 나는 판단력, 인내, 공정함을 배웠고, 이 가치들은 지금도 내 일상을 이끌어주는 원동력이다. 한때 관중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가 심판의 자리에 서자 너무나도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의 흐름, 선수들의 감정, 팀의 전략들, 그리고 나의 판정 하나로 인해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그 사실은 내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과거에는 심판의 실수를 무조건 비난했고, 경기의 질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심판을 탓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고심이 필요하고, 실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내면의 결의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이 경험이 내게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은 ‘겸손’이었다. 나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더 나은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겸손은 단지 야구장 안에서만이 아니라, 내 삶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태도로 자리잡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주의 깊게 듣게 되었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심판으로서 길러진 이 감각은 내 인간관계 속에서도 조용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내가 옳다고 쉽게 단정했지만, 이제는 상대의 시선에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심판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책임’의 무게를 내게 알려주었다. 대중이 보는 건 단 몇 초의 손짓과 판정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시간의 훈련과 고민, 그리고 자기 절제가 있다. 사람들은 결과만 평가하지만, 내가 그라운드에서 배운 건 그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갔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고, 경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심판이라는 도전을 추천하고 싶다. 그것은 단지 규칙을 외우고 판정을 내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과 기준을 다듬어가며,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심판이 된다는 것은 단지 경기장의 역할 하나를 맡는 것이 아니라, 경기의 리더가 되고, 공정함과 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수비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수많은 실수와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수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기준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였다. 지금도 경기가 끝난 뒤에는 내 콜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 마음가짐을 놓지 않으려 한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들 한다. 그리고 인생도 마찬가지다. 경기장에서 매 순간이 중요하듯, 우리 인생도 매 순간의 선택이 하나하나 이어지며 만들어진다. 나는 심판 활동을 통해 그 진리를 배웠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당신의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라도, 심판처럼 중심을 잡고 공정하게 판단하며 성장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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