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귀신 붙게 해 주세요 이로아 소설 솔직 리뷰
안녕하세요, 문화 살롱의 문지기입니다.
오늘따라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들리네요. 이런 밤이면 저는 종종 학창 시절의 복도를 떠올리곤 합니다. 눅눅한 마룻바닥 냄새, 시험 기간마다 감돌던 날카로운 정적, 그리고 그 속에서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던 친구들의 얼굴 같은 것들 말이죠. 여러분은 혹시 학창 시절, 무언가를 미치도록 빌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번 시험만 잘 보게 해 주세요" 같은 소박한 기도를 넘어, "차라리 학교가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어" 같은, 입 밖으로 내기엔 너무 위험하고 발칙한 상상을 해본 기억이 있나요?
오늘 밤, 제가 여러분의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드릴 이야기는 이로아 작가의 신작, <귀신 붙게 해 주세요>입니다.
제목부터 등골이 서늘하면서도 기이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보통 귀신은 부적을 써서라도 떼어내야 할 불청객 아닙니까? 그런데 "제발 내 몸에 붙어달라"니요.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기괴한 소원이 단순한 오컬트적 호기심이 아니라, "나 좀 살려주세요, 나 좀 인간 취급해 주세요"라는 아이들의 처절한 구조 신호임을 깨닫게 됩니다. 2026년의 대한민국, 인공지능이 과외를 하고 태블릿으로 시험을 보는 첨단 교실에서 벌어지는 가장 원시적인 비극. 이 책을 읽는 내내 저는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는 통증을 느껴야 했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 이 이야기를 마주해야 하는지, 깊은 밤의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목차]
1. 기이한 소원의 비밀
이로아 작가, 기억하시죠? 전작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에서 보여준 그 몽환적이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문체 말입니다. 작가는 늘 현실의 가장 아픈 고름을 '판타지'라는 멸균 거즈로 덮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너무 적나라해서 차마 맨눈으로 보기 힘든 현실을, 비현실의 설정을 빌려 직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이번 작품의 주인공 '윤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평범'의 범주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아이죠. 윤나가 다니는 학교에서 '성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입는 옷, 먹는 밥, 숨 쉬는 공기의 질까지 결정하는 절대적인 계급입니다. 이곳에서 '귀신'은 공포 영화 속의 원혼이 아닙니다. 윤나에게 귀신은 내 부족한 등급을 메워줄 '최고급 AI'이자 '치트키'로 인식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귀신이 나올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떠는 게 아니라, "왜 나한테는 귀신이 안 붙지?"라며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의 모습을요. 마치 서울 대치동 1타 강사 수업을 등록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학부모처럼, 윤나는 간절하게 귀신을 찾아 헤맵니다. 작가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귀신이 더 무서운가, 아니면 4등급 성적표가 더 무서운가?" 이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건, 이것이 소설 속 과장이 아니라 2026년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리얼 다큐'이기 때문일 겁니다.
2. 1등급, 달콤한 독배
소설 속 학교에는 '로열 로드'라 불리는 잔인한 룰이 존재합니다. 전 과목 1등급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죠. 이건 단순히 상장 몇 개 더 주는 수준이 아닙니다. 1등급들은 최고급 산소 발생기와 안마 의자가 구비된 '프리미엄 독서실'을 독점합니다. 반면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곰팡이 냄새가 나고 에어컨도 고장 난 지하 자습실로 밀려납니다. 급식실 줄 서기부터 화장실 사용까지, 모든 것이 철저하게 '등급순'입니다.
더 끔찍한 건 '면죄부'입니다. 1등급 아이가 교칙을 어기면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받아서 그렇겠지"라며 묵인되지만, 하위권 아이가 똑같은 행동을 하면 "가정 교육이 문제"라며 징계를 받습니다. 윤나는 이 '성골(聖骨)'들의 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해, 20년 전 전설적인 전교 1등 귀신 '순지'를 소환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우주의 진리를 얻으려 했다면, 고작 고등학생인 윤나는 '인간 대접'을 받기 위해 영혼을 엽니다.
"성적이 나쁘면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아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심지어 엄마조차 저를 흐릿하게 봐요. 저는 선명해지고 싶어요."
윤나의 이 독백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습니다. 윤나에게 빙의는 부정행위가 아니라 생존 본능이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하면서도, 결국 그 1등이 되기 위해 기꺼이 괴물과 손잡는 윤나. 혹시 거울 속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지는 않은가요? 성공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정당성쯤은 눈감아버리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 말입니다.

3. 변하지 않은 지옥도
소설의 백미는 현재의 '윤나'와 20년 전의 '순지'가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 칠판은 스마트 보드로 바뀌었고, 종이 문제집 대신 AI 튜터가 실시간으로 약점을 분석해 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본질은 소름 끼치도록 그대로입니다. 아니, 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진화했죠.
20년 전 순지가 겪었던 학교폭력이 물리적이고 직접적이었다면, 2026년 윤나가 겪는 폭력은 '데이터'와 '디지털'을 타고 흐릅니다. 단톡방에 초대해 놓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이버 유령 놀이', SNS에 교묘하게 저격 글을 올리는 '저격 놀이'. 스마트폰 알림음 하나에도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묘사는 물리적 폭력보다 더한 심리적 압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 두 시대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놓습니다. 순지가 윤나의 최신형 태블릿 PC를 보며 "기계는 똑똑해졌는데, 사람 마음은 더 차가워졌구나"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 소설의 주제를 관통합니다. 20년 동안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친 걸까요? 더 효율적으로 정답을 맞히는 기술은 기가 막히게 가르쳤지만, 옆에 있는 친구가 울고 있을 때 손수건을 건네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이 비극의 대물림,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요?
4. 어른들의 침묵과 방조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책장을 꽉 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순간은 바로 '어른들의 부재'였습니다. 물론 선생님과 부모님은 물리적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호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유지하는 '관리자'이자, 때로는 '방관자'로만 기능합니다.
소설 속 한 장면, 성적이 우수한 아이가 약한 아이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정황이 포착됩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피해 학생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윤나야, 걔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요즘 모의고사 준비하느라 예민해서 그래. 네가 좀 이해해라. 걔가 이번에 의대 갈 우리 학교 간판이잖아. 괜히 일 크게 만들어서 생활기록부 더럽히지 말자."
이 대사, 너무나 현실적이라 소름 돋지 않으신가요? 성적이 권력이 되고, 인성이 성적 뒤로 숨는 세상. 윤나가 귀신(순지)의 힘을 빌려 성적을 올리자, 선생님들의 눈빛이 180도 달라집니다. 윤나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눈 밑이 퀭해져 가는데도, 어른들은 오직 결과물인 '점수'에만 환호합니다. "윤나야, 요즘 약 먹니? 집중력이 아주 좋아졌어! 역시 하면 되는구나!"라는 칭찬을 들을 때, 윤나의 영혼은 썩어문드러지고 있었습니다. 순지의 죽음 뒤에 감춰진 비밀 또한 악마 같은 친구 한 명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어른들의 묵인과 방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5. 밤의 학교, 그 이중성
이 소설에서 '학교'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살아 숨 쉬는 괴물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입니다. 낮에는 햇살이 쏟아지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배움터처럼 보이지만, 야간 자율 학습마저 끝난 심야의 학교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발소리, 텅 빈 과학실의 서늘한 냉기,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 이런 클리셰적인 공포 장치들은 윤나와 순지의 불안한 심리와 결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가두는 거대한 감옥이자, 탈출구 없는 미로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윤나와 순지가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공간 역시 이 '밤의 학교'입니다. 감시자(선생님, 부모님, 경쟁자들)가 사라진 그곳에서, 두 외로운 영혼은 비로소 가면을 벗습니다. "나 사실 너무 무서워. 1등을 놓치면 내가 세상에서 지워질까 봐." 윤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할 때, 차가운 밤공기는 오히려 따뜻한 이불처럼 그들을 감싸줍니다.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이 가장 안전한 위로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순간. 독자는 이 이중적인 공간 속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어둠 속에서만 비로소 진짜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6. 구원은 셀프가 아니다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피하겠습니다만, 이 감동은 꼭 나누고 싶네요.)
이야기의 절정에서 윤나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계속해서 순지의 그림자에 숨어 가짜 1등, 가짜 모범생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불안하고 초라하더라도 온전한 '나'로서 설 것인가. 그리고 순지 또한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윤나를 끝까지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윤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소멸할 것인가.
보통의 귀신 이야기라면 퇴마 의식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거나, 귀신이 화려하게 복수하고 떠나는 식으로 끝났겠죠.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훨씬 더 우아하고 성숙합니다. 두 아이는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에서 '연대'하는 관계로 나아갑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때도, 지금도."
서로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큰 구원이 되는지, 작가는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윤나의 성장은 성적표의 숫자가 1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불의한 시스템에 "아니오"라고 작게나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순지 또한 20년 만에 비로소 안식을 얻습니다. 거창한 위령제가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구원은 혼자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 찾아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7. 당신의 순지를 위하여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저는 먹먹한 여운에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과연 윤나에게 손을 내미는 어른인가, 아니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며 윤나를 벼랑 끝으로 미는 시스템의 부역자인가?"
<귀신 붙게 해 주세요>는 청소년 소설(Young Adult)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사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이 필독해야 할 '반성문' 같은 책입니다. 우리가 만든 세상이 아이들을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지,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낸 수많은 '순지'들이 지금 어디서 울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지금도 어딘가 독서실 구석에서, 혹은 텅 빈 방에서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 윤나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그리고 "나 때는 더 힘들었어"라는 말로 아이들의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린 우리 어른들에게도 일독을 권합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한, 희망은 아직 그 교실 구석에,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오늘 밤, 당신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너, 정말 괜찮니?"라고요.
총평: ⭐⭐⭐⭐⭐ (4.9/5.0)
한 줄 평: 20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외로운 섬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가장 서늘하고도 따뜻한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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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문화 살롱 주인장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 있으며,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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